런던의 아침

심호흡 한번 길게 하고 지하철 출구를 통해 올라선 지상의 첫 풍경은
내 머릿속에 가득했던 런던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셜록 홈즈에서부터 세익스피어를 거쳐 찰스 디킨스, 오스카 와일드, 브론테 자매 등
현대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늘 안개 가득하고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음침한 느낌의 영국만을 생각해서인가...
구름 한점 없는 파란하늘과 눈이 부실 정도의 하늘은 어색할 정도다..
영락없는 한국의 가을 하늘이지만 빨간색 2층 버스만이 내 옆을 지나가며
런던에 온 걸 실감나게 해주는 듯 하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일단 숙소에 가방을 놓고 나오는게 당연한 순서이다..
그러나 여행의 시작날엔 1시간이나 허비하며
숙소에 다시 갔다 오는 시간마저 아깝게 느껴진다..
(아드레날린의 과다 분비로 제 정신이 아닌거죠..--;;)

런던에 오면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넓디 넒은 공원과 웨스트민스터 사원, 내셔널 갤러리...
그리고 피카디리 서커스의 버진 메가 스토어, 하이버리 구장, 애비로드...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가면서 저녁먹기 전까지 숙소에 가야하니
대충 동선을 이렇게 잡으면 되겠구나하면서...
결정한 오늘의 목적지는 버킹엄궁과 웨스트민스터 사원!

런던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미 첫번째 목적지는 웨스트민스터였다.
나의 옛 친구들이 묻혀 있는 웨스트민스터에 가서
내가 런던에 왔다고 인사는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근처에 버킹엄궁이 있었고,
그렇게 지나가면 빅벤과 런던아이도 슬쩍 보고 갈 수 있었던 경로였기에.
보기도 전에 이미 마음은 뿌듯해져 있다...ㅎㅎ

새로운 곳에 오면 가장 먼저 그곳의 지도를 구할 것!
이건 국내외를 불문하고 내 여행의 철칙이었다.
일단 지도 한장 구하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길 잃어서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뻔뻔함을 지닐 수 있게 된다.
(내 머릿 속 네비게이션을 너무 과신하는 경향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수백번 접었다, 펼쳤다를 반복하며 너덜해진 나의 런던 지도...

이번 여행 중 유일하게 돈 주고 산 런던의 지도를 들고
Green Park 나무들 속에 위치한 벤치에 앉았다..

나와는 반대방향으로 깔끔하게 차려 입은 런던너들이 Green Park 안의
Queen's walk를 따라 바쁜 걸음으로 걸어간다..
대부분 까만색 정장을 입어서인가 개미들이 줄이어 가는 모습처럼 느껴지며
'세계 어딜 가도 출근 시간의 풍경은 역시 다를게 없구나..
그래도 이 사람들은 아침마다 공원 산책(?)하며 출근하니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공원에 비해 비교적 작은 규모이지만 산책과 독서를 즐기는 이들도
종종 눈에 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t. James Park에서 만난 다람쥐...
                          할아버지가 먹이를 손에 쥐고 손짓을 하자 쪼르르 뛰어와서 받아먹고
                         다시 풀밭으로 돌어가더라는...^^



그래도 배낭여행자이기에 기내식에서 알뜰살뜰 챙겨온 음식들로
첫 아침을 대신하며 Green Park에서 한가로운 아침을 즐겨본다.
수백년은 되었음직한 큼지막한 나무들은 아마도 런던의 변화를 지켜본
역사의 증인들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지나갔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삶의 휴식을 얻어 갔다.
그 아래로 현재의 내가 지나가고, 시간이 흐른 후 과거의 나를 보기 위해
나는 다시 이 곳을 찾아올지도 모른다.
나무들은 내가 언제 다시 찾아오더라도 묵묵히 이 곳을 지키고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니가 내 여행의 첫 증인이야' 라고 괜히 혼자 한마디 던져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Green Park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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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prilnote

2006/12/11 18:46 2006/12/1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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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나와 접촉한 유럽의 낯선 땅, 런던!

나의 여행에 있어 첫 여행지에서의 기대감과 의욕, 그리고 체력은

마지막 여행지에서의 그것보다 딱 두배의 활동량을 보여주는 듯 하다.

여행내내 런던에서의 첫날을 종종 떠올리며

그 때의 마음과 의욕을 되돌려 보려 노력하였지만

절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우선 몸이 말을 듣지 않더군요...--;)

첫날엔 비행기에서 잠도 별로 안 잤음에도 불구하고

앞 뒤로 둘러맨 배낭 정도야 하는 의욕과 힘이 넘친다...


이른 아침

입국 수속에서의 묘한 긴장감을 뒤로 하고

(4주 정도 있을 거라고 하니 왜 이리 궁금한게 많으신지...)

내 마음 속에서 종소리가 '땡!'하고 울리며,

여행의 1라운드가 시작되었음을 나에게 알려 주었다.


처음엔 텅 비어 있던 지하철 의자들이 시내 중심가로 가까워지면서

하나, 둘 차기 시작한다..

여기나 한국이나 출근 시간대의 지하철 풍경은 그리 다르지 않구나..

내 앞에 앉은 저 아저씨는 또 하나의 동양인 여행객이

런던에 놀러온 모습을 보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기억이나 할까?

출근 지하철에서 만난 그들에게는 매일 매일 지나치는 시간과 공간 속에

그냥 내가 잠시 단역으로

출연하고 간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는 그 단역이 몇번 더 출연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조연으로 출연한 이들의 인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지나가는 행인2, 또는 동양인 여행객3 이상의

역할을 따내기는 어렵다..


여행지의 하루와 내가 늘상 해오던 평범한 일상 속의 하루는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내 주변의 풍경과 들려오는 언어들이 변화되고

한국에서는 쉽게 해오던 일들이

조금 어렵게 느껴진다.

지하철 타기, 버스 타기, 심지어는 횡단보도 건너기와 같은

그냥 매일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행하는 행동들이

여행지에서는 조금 더 극적으로 느껴지는 것 뿐이다.


여행지에서는 눈 뜨고 있는 시간 동안 줄곧 선택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루를 보내게 된다.

한국에서도 늘 '오늘 점심은 뭐 먹지',

친구들 만나면 '뭐 먹으러 갈까?' 하는 고민에 빠지긴 하지만

지금은 최소 5가지는 더 조건 항목들이 추가되어 하루 끼니를 때우기 위한 문제를

해결하는 알고리즘을 진행하게 된다.

머릿속에 가득찬 '만약'이라는 문구들과

이 모든 고민을 여행의 묘미라 치환해 버리며

솟구치는 불안감과 짜증을 진정시키려 노력하지만

어디 물어볼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는

슬쩍 슬쩍 주변 눈치 살피면서

그냥 묵묵히 여행 책자와 지도만 뒤적일 뿐이다.


앞으로의 일정은 먼 미래일 뿐

당장 오늘 일정은 어떻게 할까하는 고민만으로도

'역시 집나가면 고생이야' 라는 명언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그래도 내 두발이 지금 한국이 아닌 다른 곳의 땅과 맞닿아

서 있다는 기분이 이 모든걸 즐겁게 해주는게 아닐까...

            여행의 첫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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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prilnote

2006/08/03 14:01 2006/08/0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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